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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골프공 탄생 그리고 발전사

by crave23 2023. 4. 6.

최초의 골프공 탄생 그리고 발전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관련된 많은 정보가 학술지나 칼럼, 블로그, 신문기사 등을 통해 게시되고 있지만 취미 생활이든 직업적인 부분이든 골프를 접하기 시작하신 분들을 위해 쉽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실제 관련 정보나 문헌은 증명된 것이 없으나 당시 기술력이나 골프가 시작된 시기를 감안해 본다면 최초의 골프공은 나무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가장 타당성이 높습니다.

 

골프의 시작이 양을 치던 목동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토끼가 파 놓은 굴에 지팡이로 돌을 쳐서 넣은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을 본다면 돌멩이 다음으로 가장 유력한 소재는 나무가 유력했을 것입니다.

 

 

깃털 공(페더리 볼/Feathery Ball)

역사적인 기록이 존재하는 최초의 볼은 새의 깃털과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페더리 볼입니다. ‘리처드 글레이스(RichardClays)'라는 상인이 1486년 네덜란드에서 스코틀랜드로 들여왔다는 최초의 공식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1681년 스코틀랜드에서 페더리 골프공을 사용하기 시작한 기록이 있습니다. 닭이나 오리털을 사용하던 방법이 내구성을 이유로 거위털을 전문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습기에 약하고 제조기간이 길었습니다.

 

 

하루에 한 사람이 최대로 만들어야 4~5개였고 가격도 비쌌습니다. 또한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발암물질이나 깃털의 먼지로 인해 폐암으로 사망하는 장인들이 많았습니다. 볼을 가장 많이 만든 장인 알렌 로버트슨도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구타페르카 공(Gutta-Percha Ball)

1848년 성직자이며 골프광이있던 로버트 패터슨에 의해 구타페르카 공이 발명됩니다. 구타페르카는 동남아 지역의 구타나무에서 얻어진 고무 수액으로 열을 가하면 쉽게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었고 식으면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었습니다.

 

구티 공의 가격은 페더리 볼의 20% 수준이었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방수성이 우수했으며 비거리도 개선되었습니다. 골프공의 규격화도 이때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수제 단조 구타 공(Hammered Gutta Ball)

초창기 구티 공은 표면이 매끄러웠는데 표면이 손상될수록 더 멀리 날아간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제조업자들은 골프공 표면에 끝이 뾰족한 망치로 일정한 패턴을 새겨 핸드메이드 구티 볼을 만들었습니다.

 

핸드메이드 구티 볼은 이후 철 금형에 의해 표면에 망치로 두드려 흠집을 낸 ‘수제 단조 구타’ 공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딤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메탈 프레스가 도입되면서부터는 가격도 더 저렴해졌습니다.

 

산딸기 무늬의 구타 공(Bramble Ball)

브램블베리를 닮은 미세하고 볼록한 ‘브램블’ 디자인은 구티 골프공 중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인이었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제작자 올드 톰 모리스의 공이 유명세를 탔으며 현재의 오목한 모양의 딤플과는 반대의 패턴이었습니다.

 

고무공(Rubber Ball)

고무공의 등장은 골프계의 혁신을 가져옵니다. 1898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코번 하스켈은 지인이 일하는 고무공장에 방문해 지인을 기다리면서 고무실 뭉치를 가지고 놀았는데 고무실 뭉치가 천장까지 튕겨 오르는 것을 보고 고무공을 착안합니다.

 

그렇게 코번 하스켈은 친구인 버트럼 웍과 함께 '하스켈 볼(Haskell Ball)‘을 발명합니다. 1901년 하스켈은 특허를 내고 하스켈 공을 대량으로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볼이 너무 튄다며 불평이 많았지만 1902년 하스켈 공을 사용한 선수가 디오픈과 US오픈에서 우승하자 곧 불만은 맹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여파로 미국 회사로는 처음으로 골프공을 제작하기 시작했던 스팔딩은, 1901년에 ‘해리 바든’ 선수와 콜라보로 ‘바든 플라이어’를 선보였지만 하스켈 공에 무참이 밀렸다고 합니다. 스팔딩은 1890년대부터 구티공을 대량 생산하였고 그것은 곧 회사의 주 수입원이었지만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스팔딩은 하스켈의 특허 때문에 내내 구식이 된 구티 공만 제작하다가 1917년 하스켈의 특허를 사들이면서 골프공 시장의 최고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솔리드 코어 공(Solid-core Ball)

1968년 스팔딩은 ‘이그제큐티브 볼’을 소개합니다. 스팔딩은 고무실을 이용한 기존의 하스켈 공과 달리 고무를 고체로 만들어 공의 속을 채운 ‘솔리드 코어 공’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최초의 투피스 공이었습니다. 솔리드 코어 공법으로 만들어진 골프공은 비거리의 혁신을 가져오게 됩니다.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이 ‘솔리드 코어 공’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도부터입니다. 타이거 우즈가 2000년 05월 나이키의 ‘투어 애큐러시’라는 쓰리 피스 공으로 US오픈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거두자 하스켈 공은 외면받기 시작했습니다.

 

1932년부터 골프공의 무게와 사이즈에 대한 규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딤플에 대한 많은 연구와 변화가 있었고, 스팔딩의 투피스 볼을 시작으로 현재는 쓰리 피스, 포 피스 볼의 형태로 발전되었습니다.

 

골프 클럽을 비롯해 골프공은 선수들의 기량 발휘에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겠지만 1타의 점수 차이로 우승 상금과 순위가 달라지는 프로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최초의 골프공 탄생 그리고 발전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소 생소한 단어도 보이실 텐데요, 저작권 문제로 당시 공의 상세모습을 첨부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검색하시면 이미지 사진이 많이 노출될 테니(저는 쫄보라 저작권 문제 때문에 사진을 함부로 첨부하지 못했습니다.)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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