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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골프!!

한국 여자프로골프의 선구자 구옥희 선수

by crave23 2023. 4. 8.

한국 여자프로골프의 선구자 구옥희 선수는 1956년 경기도 연천군 출신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오빠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1975년 연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고 고양에 위치한 123골프장(6홀)에서 캐디로 일하며 처음 골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골프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던 구옥희 선수는 혼자 독학으로 골프 스윙을 익히고 자신만의 스윙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실력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골프에 놀라운 재능을 보이자 동료들은 골프선수를 적극 권유했습니다.

 

한국 여자프로 선수의 탄생

1976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각 골프장에 여자 프로도 키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1978 05월에 골프장 대표 선수 8명이 모여서 테스트를 진행하였는데 남자 프로테스가 진행되던 경기의 맨 뒷조로 편성되었습니다.

 

남성용 하프세트로 연습을 하던 여자 선수들은 테스트 당일 골프장의 여성회원에게 여자용 골프 풀세트를 빌려서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골프화도 빌려서 신었었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뒤꿈치에 상처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테스트가 진행된 골프장은 ‘로얄컨트리클럽’이었으며 이틀간 평균타수 80타 안에만 들어오면 합격시켰습니다. 배구선수 출신 강춘자 선수가 토탈 스코어 155타로 1, 한명현 선수와 구옥희 선수가 156, 안종현 선수가 157타로 합격했습니다.

 

한국 여자프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강춘자 선수가 KLPGA 회원번호 1, 한명현 선수가 2, 구옥희 선수가 3, 안종현 선수가 4번으로 등록이 됩니다.

 

 

투포환 선수 이력을 가지고 있던 구옥희 선수는 장타자였습니다. 당시 선수들이 사용한 드라이버는 감나무(퍼시먼) 헤드였는데 선수들의 평균 거리는 190m인 반면 구옥희 선수는 20m 가까이 더 나갔다고 합니다.

 

2년 동안 준비를 하고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지만 당시 여자 프로골퍼의 현실은 초라하고 고달팠습니다. 1978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주관한 선수권대회는 단 1회만 개최되었고 이후 10년 동안 열린 시즌 대회는 5~7개 뿐이었습니다.

 

대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 프로선수들 모두 생계를 위해 골프장 캐디를 하거나 레슨을 하며 투잡을 뛰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열리는 대회의 총상금은 50만원, 30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NO.1’의 삶을 살았던 구옥희 선수

 구옥희 선수는 KLPGA 회원번호는 3번이었지만 항상 ‘NO.1’처럼 살았습니다. 1979년 쾌남오픈에서 첫 우승을 하였고 1980년 오란씨오픈, 쾌남오픈, 부산오픈, 수원오픈, KLPGA 선수권에서 모두 우승을 하며 화제를 일으켰고 연중 대회 전승기록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1981년에는 쾌남오픈, 부산오픈, 동해오픈, KLPGA선수권에서 우승을 하는 등 국내 무대에서만 20승을 기록하였습니다. 1982KLPGA선수권대회에서는 72홀 토탈 스코어 최다 20타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구옥희 선수는 일본동포의 권유로 198327살의 나이로 일본에 진출합니다. 해외로 진출한 첫 한국 여자프로선수였습니다. 1984년 일본 여자투어에 참가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해 상큼 랭킹 13위에 올랐습니다.

 

1988 03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클래식에 참가한 구옥희 선수는 우승을 하며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LPGA 투어 우승자 1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88올림픽과 겹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때 받은 메달은 내 골프 보물 1라고 얘기했었습니다.

 

2005 06 19일 구옥희 선수는 일본에서 마지막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LPGA 투어 서클K 서스크 레이디스 오픈에서 일본 진출 후 23번째 우승을 거두는 순간이었으며 그녀의 나이 49세였습니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KLPGA 부회장직을 맡았고 2011년부터 2012 03월까지는 KLPGA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2004년에는 한국여자골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명예의 전당 1로 헌정되었습니다.

 

구옥희 선수는 국내 20, 해외 24(일본 23, 미국1승)으로 개인 통산 44승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늘 최초’, ‘최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한 시즌 전승 기록, 3개국(한국, 미국, 일본) 투어 제패, 최다 7연승(1979~1981), KLPGA 명예의 전당 헌액 1, KLPGA 최고령 우승(45) 등이 그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한국 여자골프의 큰 별이 지다

한국 여자골프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이었던 구옥희 선수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골프 외에 별다른 취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외골수적인 면이 있었고 말 수도 별로 없었기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2013년 07월 10일 JLPGA 프로테스트를 준비 중이었던 조카와 그의 친구를 지도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던 구옥희 선수는 사망 당일 아침에 너무 피곤하니 너희끼리 운동하고 와라라고 한 후 숙소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습니다.

 

당시 지인을 통해 비보를 들은 강춘자 KLPGA 수석부회장은 바로 일본으로 향했고 구옥희 선수의 유해는 07월 16일 유가족을 비롯,  KLPGA 관계자와 함께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KLPGA는 구옥희 전 회장이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협회장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습니다. 

 

강춘자 KLPGA 수석부회장은 친구이자 경쟁자였으며 가장 존경했던 선수라며 눈물을 글썽였고 한장상 KPGA 고문은 그는 한국여자골프를 일으킨 1호다고 회상했으며 황성하 KPGA 회장은 한국 여자골프의 큰 별이 져서 안타깝다고 추모했습니다.

 

박종길 문화체육관광부 제2 차관은 16일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하고 대통령을 대신해 (故)구옥희 선수에게 체육훈장 맹호장(2등급)을 추서 했습니다. 체육훈장 맹호장은 우리나라 체육 발전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입니다. 

 

한국 여자프로골프의 선구자 구옥희 선수는 그렇게 홀로 쓸쓸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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